피부 검버섯 제거 (시베리아 들꽃)
"식물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수록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드는 '특수 성분'을 많이 가집니다. 영하 30도 이하의 혹한(酷寒)을 견뎌야 하는 시베리아 식물은 이런 특수 성분이 더 많습니다."
러시아 시베리아지역의 바이칼 호수 주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릉분원의 엄병헌 박사와 ㈜아모레퍼시픽의 피부과학연구소 이찬우 선임연구원은 푸른 눈의 러시아인에게 시베리아 식물들에 대한 설명을 듣느라 여념이 없었다.
바이칼 허브라는 식물 원료 추출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호로슈틴 바벨 사장은 이곳에서 자라는 노란 들꽃을 들어 보이며, "이 식물의 즙을 피부 검버섯 등에 바르면 검버섯이 점점 없어지는 효과가 있다"며 "시베리아 지역의 식물 원료에 관심을 갖고, 독일, 일본, 미국은 물론 핀란드, 노르웨이, 태국 등에서도 수많은 과학자들이 찾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외국의 높은 관심 때문에, 일년에 2~3번 이상은 이들 나라에 초청을 받아 출장을 간다"고 덧붙였다.
◆시베리아는 지금 식물자원 확보 전쟁 중
시베리아가 신약과 화장품의 보고(寶庫)로 떠오르고 있다. 시베리아는 아시아 대륙 면적의 4분의 1, 세계 대륙 면적의 10분의 1을 차지할 만큼 광활한 땅이다. 거대한 땅 넓이와 특수한 기후 때문에 이 지역에서 서식하는 식물 종류는 약 4500종(버섯류, 양치류 제외)이 넘는다. 이 중 상업적으로 사용되는 식물은 80여종에 불과하다. 신약과 화장품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식물이 무궁무진하게 숨겨져 있는 셈이다.
얼마 전부터 아모레퍼시픽과 KIST는 공동으로 시베리아에서만 자생하는 식물 중에서 현지에서 피부치료에 사용돼 온 식물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이 정보는 새로운 기능성 화장품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약용 식물 중에서 노화를 일으키는 활성산소의 작용을 막는 효능이 있는 것을 찾아 피부노화방지 화장품을 개발하는 식이다.
시베리아의 식물 자원에 관심을 갖는 나라는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시베리아의 과학 중심 도시 '노보시비르스크'의 천연물업체 신암의 셰부조브 세르게이 알레크산드로비치 사장은 "아프리카나 라틴아메리카 등지의 천연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산업화가 덜 된 시베리아 천연물에 대한 세계 각국 기업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KIST를 중심으로 시베리아 지역 천연 생물자원 공동 연구 센터를 설립을 계획하는 등 연구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KIST측은 "시베리아 천연물을 활용해 응용할 수 있는 분야는 화장품 원료뿐 아니라, 식물생장 조절제, 심혈관계 식의약품 소재 개발 등 종류가 다양하다"고 말했다.
◆식물은 신약과 화장품의 보고
약용 식물에 대한 관심은 1990년대 이후 제약업계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즉각적인 치료효과보다는 예방과 안전성이 강조되면서 오랫동안 인류가 사용해온 약용 식물이 주목받은 것이다. 덕분에 80년대 중반 의약품의 75%가 화학합성물질이었지만 90년대 들어 식물 등 천연물 유래 의약품이 60%를 넘어섰다. 한해 1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대표적인 항암제 '탁솔'도 약용으로 쓰이던 주목나무 껍질에서 약효성분을 찾아내 만든 것이다. 지난해 600억원의 매출을 올린 국산 위염치료 신약 '스티렌'도 강화도 약쑥에서 유래했다.
화장품 기업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서 천연 식물을 이용한 대표적인 화장품은 '설화수'. 경희대 한의대와 공동연구를 통해 만들어진 이 제품은 6년근 인삼과 옥죽(둥글레)·작약·연자육·백합·자황 등 5가지 한약재 혼합물인 '자음단'을 18시간 이상 달여 만든 것으로, 1년 매출액만 5000억원이 넘는다. 요즘도 '인도네시아 약용 식물' 등 식물을 원료로 한 화장품이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
KIST의 엄병헌 박사는 "그 동안 수출입 규제 등으로 시베리아 천연 생물자원이 외국에 거래되기 시작한 것은 5~10년밖에 안 됐다"며 "러시아의 우수한 생물자원과 기초과학기술을 우리나라의 뛰어난 응용기술에 접목하면 세계 시장을 노릴 수 있는 국산 신약과 화장품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조선일보 스크랩 )